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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 창시자 < 파블로 피카소 > 피카소생애, 작품 및 특징

pupu91 2020. 12. 2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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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 1881 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 출생

그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피카소의 어린시절 그림들

 

9살때 그린그림

 

 

 

 

 

 

 

12살때 그린그림

 

 

 

 

 

 

 

 

14살때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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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때 그린 그림

 

 

 

 

 

 

16살때 그린 그림

 

 

∨ 17세 때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면서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특히 르누아르, 툴루즈 로트레크, 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들의 화법을 탐구했다.

 

1900년 처음으로 파리 방문 후 1901년 파리에 정착하였지만, 그곳의 생활은 그가 동경했던 도시 생활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며 도시의 가난을 두려워하였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고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인내하며 지냈지만, 당시의 요절한 화가들에 비하면 피카소는 단기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01년 20세. 첫 전시회 개최하며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였고, 피카소는 파리의 비참한 생활상을 주세로 거지와 가난한 가족등을 그렸다. 

 

 피카소의 초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청색시대, 장미시대, 원시 시대,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 종합적 입체 주의 시대로 나뉜다. 

 

 

 

 

청색시대(1901~1904)

 

- 파리의 비참한 생활상에 주목하여 청색을 주조로 거지와 가난한 가족등을 그렸다,

-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 이 시기의 작품은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차가운 인디고, 코발트 블루 등 청색의 색조와 길게 늘어진 형태의 인물 등이 특징이다.

 

 

 

<비극> 파블로 피카소,1903년

 

 

<인생>,파블로 피카소, 1903년

 

 

 

장미 시대(1905~1907)

 

-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연애를 하였고, 색조가 청색에서 핑크색과 오렌지색의 색조를 사용하면서 색상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고 그 생활(하위계층)의 이면을 파세친 것있었다.

 

<곡예사 가족>,파블로 피카소, 1905

 

원시 시대(1908~1909)

 

- 파리 트로카데로에 있는 인류사 박물관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조각품과 가면들에서 보여지는 마술적인 분위기, 강력한 상징성, 공포감, 원시적인 감각 등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을 선보였다

- 인물들을 각이 지게 묘사한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아비뇽의 처녀들>,캔버스에 유채, 243.9 x 233.7 cm, 1907년, 파블로 피카소

그림에는 다섯 여성의 누드가 등장하는데, 바르셀로나 아비뇽 인근 사창가 여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여성들의 인체, 배경이 원근법에 구애되지 않고 하나의 면 위에서 뒤섞여 처리되어 있으며, 그림 하단에 놓인 과일 담긴 탁자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을 담고 있어 여성을 보는 각도와 충돌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묘사된 대상이 전부 입방체로 변환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19세기 말 유럽 예술계를 강타한 원시 아프리카 미술의 모티프도 뒤섞여 나타난다.

그림 우측의 여인 둘은 서부 아프리카의 원시 가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전한다. 그림의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 때문에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이 그림이 ‘미완성’ 상태라고까지 평가한다. 한편 피카소의 그림들에서 성병에 대한 화가 자신의 두려움을 읽어낸 바 있는 존 버거처럼, 미술사가 윌리엄 루빈도 <아비뇽의 처녀들> 속에서 변형되어 그려진 얼굴이 매독 증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현재 이 그림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소장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힌다.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1908~1912)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1912~1913)

 

- 피카소는 동료 미술가인 브라크와 함께 구상 작품인  <기타를 든 여인>과 정물화인 <죽은새들>을 제작하면서, 3차원적인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입체주의 양식의 독창적인 기법과 이론들을 정립시켰다. 또한, 피카소는 <기타>(1912~1913)와 같은 입체주의 조각들에서 3차원의 물체들을 거의 그림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공간적인 순서를 반대로 처리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식탁 위의 병과 포도주 잔>(1912)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신문, 종이, 헝겊을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 위에 덧붙였다.

 

<기타>, 철판+철사, 높이 78.1cm, 1912년, 뉴욕 근대 미술관, 피카소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은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조각상처럼 견고한 신고전주의적인 구상 작품들을 제작하다가,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옮겨갔으며, 1930년대에는 뛰어난 기교를 선보인 에칭 작품인 <미노타우로마키>(1935)에서처럼, 신화적인 주제들을 탐구했다. 그는 활동기간 내내, 구성과 공간, 그리고 기법과 색채에 신경을 썼고, 투우, 기타, 어릿광대와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채택했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란 중에는 벽화 <게르니카>(1937)를 제작하여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는 <게르니카> 이후에도 드로잉, 에칭, 회화 연작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표현했는데, 에칭 작품인 <우는 여인>(1937)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피카소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시녀들>(1957)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선배 미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1960년대에는 색채주의 작품들을 제작했으며, 이 중 일부는 신표현주의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게르니카>, 유채, 351x782cm, 1937년

이 작품은 스페인의 게르니카라는 마을이 프랑코의 사주를 받은 독일 공군에 의해 폭격을 당해 많은 희생자를 냈던 사건을 한장면으로 압축하였다. 전등에서 퍼쳐나오는 빛은 곧 어수선한 화면의 상황의 원인인 폭격을 암시하며, 위협적이고 당당해 보이는 황소와 몸을 뒤틀며 울부짖는 말로써 무자비한 파괴자와 연약한 희생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으로 설정된 여인들의 이미지로써 희생자들을 표현한 것은 실제 상황에서도 여자들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대낮에 폭격을 당해 무방비상태에서 무고한 희생을 치렀음을 고발적으로 전해주고자 한 것이다.

 

 

 

 

 

<우는여자> 유채, 53.3x 44.5cm, 1937년

 

<게르니카>와 관련된 테마로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를 그리면서 많은 예비 스케치를 했고, 이 역사적 대작을 완성한 다음에도 계속 <우는여자>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모델은 새로 등장한 도라미르이다. 이 여인은 피카소 주변의 여인들 가운데 가장 지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분노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36 -1945년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피카소와 보내었다.

 

 

 

 

 

한편 도기()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고 석판화의 제작도 많아 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법을 창조하였다. 그 후 6.25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 <전쟁과 평화> 등의 대작을 제작하여, 현대미술의 리더로서 거장다운 활약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학살> 유채, 209x109cm, 1951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ABLO PICASSO(501 위대한 화가, 2009. 8. 20., 스티븐 파딩, 위키미디어 커먼즈, 더 브릿지먼 아트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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