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세기 테베레 강변 근처 소규모 시에서 시작된 로마는 오랜 에트루리아 문명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공화정치 형태 확립하며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했다. ㅠ 로마제국은 그리스와 같은 구시대 문화를 흡수해 *그레코로만이라는 문화 형태를 북부 아프리카와 서부 유럽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모든 시대에 예술적인 발판을 제공했다.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교류하면서 로마인은 그리스 문화에 압도당하며, 그리스의 청동 조각과 대리석상을 들여와 로마 광장에 진열할 정도로 그리스적 취미에 열광하였다. 비록 로마인들이 정치, 군사력으로 그리스인들을 지배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리스인들의 우수한 예술과 문화에 굴복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미술뿐만 아니라, 수사학, 시, 철학 등에도 매료되어 많은 그리스 조각가들과 화가, 지식인을 비롯한 수많은 장인들을 고용했다. 로마제국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조각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대부분 그리스 조각상을 모사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로마는 그리스 문화의 절대적 영향력에 차차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과 철학을 키웠으며, 로마 예술은 고전기 그리스 예술에 비해 이상적이거나 지적인 면을 덜한 반면, 더욱 현실적이고 기능에 충실했다.
■ 로마 미술의 특징
대표도시 | 모방의 본보기 | 철학 | 대표미술품 | 가장 유명한 건물 | 주요 공헌 |
º 로마 | º 그리스 | º 능률 º조직력 º실제력 |
º 모자이크 º 사실적인 벽화 º 이상화된 공식 조각상 |
º 판테온 | º법률 º건축공학 º시멘트 |
1. 로 마 건 축 |
로마가 로마법 외에 세계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건축공학이다. 로마 건축가들은 궁륭과 아치, 돔을 개발한 것 이외에도 최초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이와 같은 혁신적인 건축 기술 덕분에 로마인들은 최초로 받침대 없이 거대한 내부 공간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로마 건축은 그리스 형식을 사용하면서 아치와 같은 새로운 건축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그리스의 지주와 상인방 구조에 비해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기둥들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콘크리트는 원통형 궁륭 같은 유영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고, 형성된 거대한 원형 공간을 돔으로 덮었다.
다음은 로마 건축이 건축사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들이다.
º 바실리카 : 채광창이 있고 양끝이 반원 형태인 직사각형의 건물, 로마 시대에는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고 중세 교회 건축에 널리 모방되었다.
º 원통형 궁륭 : 반 원동형의 지붕을 형성하는 깊숙한 아치.
º 교차 궁륭 : 두개의 원통형 궁륭이 같은 높이, 같은 각도에서 서로 교차한 형태
그리스, 로마 건축 차이점
그리스 | 로마 | |
설립 목적 | 신을 경배하는 신전 |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공공건물(목욕탕, 공회당) |
벽면 자재 | 돌을 잘라 만든 벽돌 | 장식 문양 콘크리트 |
기본형 | 직사각형, 직선적 | 원형, 곡선형 |
지지 구조 | 지주와 상인방 | 둥근 아치, 궁륭 |
원주 양식 |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 코린트식 |
조각품 | 신과 여신을 이상화한 것 | 사실적인 인간상, 관리를 이상화한 조각상 |
회화 | 공중에 떠있는 듯한 양식 | 원근법을 사용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물 |
미술 주제 | 신화 | 관직에 있는 인물, 군사적 영광을 묘사 |
■ 대표 건축 |
<콜로세움> 기원후 70-82년, 로마
수백만에 이르는 로마 인구의 대부분은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여 불평이 많아져 황제들은 대규모의 공공 오락을 통해 그들의 불평을 무마하려 했다. 이는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콜로세움이다.
아치와 궁륭에서 쌓은 경험과 콘크리트를 쓰면서 쌓은 경험으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꿈도 꿀 수 없던 규모의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기법들을 응용한 콜로세움은 기원후 80년에 문을 열어 관객 5만 명을 채우고 3,000여 명이 넘는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규모의 무대를 경기장 전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높이가 약 50미터인 건물은 그리스 건축에서 사용되었던 세 가지 양식을 전부 응요하고 있다. 도리아식을 변형한 1층. 2층은 이오니아식, 3층 4층은 코린트 양식의 반원주로 이루어졌다. 수직의 우너 주와 수평의 아치를 조화롭게 통합시켜서 거대한 정문을 친숙하게 보이도록 했으며, 로마식 구조와 그리스 기둥 양식의 결합은 이후의 건축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판테온> 기원후 118-125년, 로마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만들어 졌다. 돔으로 덮인 원형 건물인 판테온은 공간을 둘러싸는 로마 건축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다. 당시 판테온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전하는 바 없으며 현재는 신전으로만 알려져 있다. 아그리파 집정관 때 처음 만들어진 건축의 흔적으로는 석판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한다.
2. 로 마 조 각 |
로마인들은 당시 유행했던 헬레니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스 조각들을 대량으로 복제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특징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로마인들은 집에 밀랍으로 만든 데스마스크를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죽은 자의 얼굴에서 직접 주물을 뜨기 때문에 매우 사실 적이었는데 이와 같은 전통이 로마의 조각에 영향을 주어 로마 조각들의 실제적인 특징을 띤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예외적으로 로마에서 수천 킬로 미터 떨어진 지방 관청은 황제, 정치인, 장군들을 신과 같은 위용으로 묘사한 흉상을 대량 복제해서 전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왕권교체의 주요 수단으로 암살이 사용되었던 로마 제국 쇠망기의 초상 조각은 다시 직설적이고 실제적인 표현 방식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카라칼라> 215년경, 로마 ▲ <필리푸스> 244-249년경, 로마
전혀 미화되지 않은 카라칼라 조상은 잔인한 독재자의 모습을 잘드러내고 있고, 필리후스는 의심 많은 폭군으로 묘사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원후 165년,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
전쟁을 증오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레리우스. 조각가는 온화하고 사색적인 지배자를 초인간적인 존재로 이상화했다.
로마 조각의 또 다른 주요 형태는 서사적인 부조다. 개선문 아치에는 정복 전쟁을 묘사한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그 밑으로 개선 군이 사슬에 묶인 포로들을 이끌고 행진했다. 그중 가장 야심적인 작품이 트라야 누스 황제의 기념주이다. 약 200미터 길이의 부조가 나선형으로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데 적어도 150개 이상의 대량학살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트라야 누스 황제의 기념주> 114년경, 로마
3. 로마 회화 |
로마인들은 그리스 조각과 마친가지로 그리스 회화들도 찬미하여 미술가들을 고용해 유명한 그리스 작품을 베껴 그리도록 했다. 이런 모작들을 그릴 벽의 배경을 그리는 일에 대단히 열성적이어서 복잡하고 변화 있게 벽을 구성하는 연구에 몰두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단일 인물상, 군상, 완전한 패널화 들이 복제되었으며 화가의 능력과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원작이 훼손되거나 더욱 미화되기도 했다.
▲ <그리스 원작을 모사한 로마 시대 벽화>
현재 남아있는 로마회화의 대부부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 있는 개인 주택과 공공건물 벽에서 나온 것들이며, 이를 통해 벽면 장식을 네 가지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양식은 기원전 2세기경에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회화와는 관계없다. 이양식은 벽이 다른 종류의 대리석 판처럼 채색된 석고로 벽면을 덮었다. 벽면 전체를 마치 값비싼 외국산 대리석으로 꾸민 듯이 한 것이 특징이다.
제2양식은 로마에서 독창적으로 만들어져 기원전 1세기 초엽에 유행했다. 방의 경계가 뒤로 물러난 듯이 보이게 하거나 벽면이 완전히 제거된 것처럼 보이도록 이종의 눈속임 기법으로 그려졌다. 논리적이고 시각적으로 그럴듯한 이 양식은 기원전 1세기 말에 시들해지고 제3 양식이 창안되었다.
▲ 제2양식 <프리마 포르타에 있는 리비아의 집 벽화>
제3양식은 논리적인 외양을 거부하고 한정된 특징을 강조하면서 세부 처리를 미묘하고 복작하게 하는 것을 즐겼다. 매혹적인 제3양식의 예는 폼페이 근교의 보스코트레카세에 있는 별장 벽화에서 볼 수 있다. 검고 평평하며 빈 공간이 없는 벽 한가운데 작은 풍경이 있다. 벽의 검은 배경은 관대하다고 해석될 수도 있으며 밝게 빛나는 풍경은 삼차원적이며 능숙한 광선 처리가 생생한 깊이감을 준다.
제4양식은 벽의 경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제2양식의 무한성과 제3양식의 우아함이 합쳐져 창조된 것이다. 폼페이에 있는 '베티의 집' 내부는 제4양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 제4양식 <베티의집>
참고문헌: 클릭,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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