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2.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의 특징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크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으로 B.C 4천 년경부터 B.C 700년까지 지속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작은 마을들이 모여,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잦은 전쟁을 반복하며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지리적 환경으로 보아 외부의 침략이 많을 수밖에 없는 메소포타미아는 잦은 전쟁으로 국가와 민족도 자주 바뀌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번영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허강 유역의 황허 문명 등과 더불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크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하는 수메르 문명, 아카드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아시리아 문명 등 서남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명을 모두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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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 아카드인(셈족)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세운 최초의 사람들인 수메르인은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하고 종교, 수학, 법률, 건축법 등을 발달시켰다. 기원전 29000년경부터 제2의 지배민족인 셈족의 사르곤 왕이 아카드 왕국을 수립하면서 아카드인은 설형문자를 채용하고 보급시키는 등 수메르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180년 동안 계속된 아카드 시대에 수메르인과 아카드인 두 종족이 융합함으로써 수메르 문명은 점차 셈화하여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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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
청동기 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초기 아시리아 왕국(B.C 20세기 ~ 15세기)과 바빌론 왕국이 등장한다. 기원전 1700년경 바빌로니아를 창건한 함무라비는 바빌론을 수도로 정하고 법전을 만들어 최초로 성문화 했다. 이때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역이 되었다. 함무라비와의 사적중 법전의 제정과 달력, 도량형의 통일, 아카 드어의 보급 등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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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마무르인 출신의 샴시 아다드 1세는 아수르 시를 정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모두 정복했다. 그러나 분쟁과 갈등으로 마리 왕국이 분열되어 바빌론의 함무라비와 동맹하여 왕국을 정복했다. 이후 아시리아는 약 1세기간 바빌론의 속국으로 남아있다가, 바빌론에 침입한 후리르인에게 정복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리적으로 사막과 바다에 둘러 싸여 있어 폐쇄적인 특징을 띄는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진취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지리적 환경으로 보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이고 능동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
메소포타미아는 지리적으로 사방이 트여 있어, 주변 국가들 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통치 세력이 수시로 교체되었다.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집착하여, 분묘보다는 궁전, 신전등을 건설하며 건축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조각 작품 또한 주를 이뤘다. 사냥이나 전쟁 장면 등 현실적인 소재를 사실적이고 진취적인 표현으로 기념비적 부조와 장식적 조각이 발달했다.
이들은 일상생활의 안전을 바랐기 때문에 여러 신을 믿었으며, 이러한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1. 건축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문명권에 비해 문명이 적게 남겨져 있다. 이집트와 다르게 석제가 귀했던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흙으로 빚어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흙벽돌을 사용해 신전을 중심으로 한 정교한 도시를 만들어나갔다. 작은 벽돌로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를 수 없기 때문에 벽돌로 벽을 쌓아 아치를 세우는 기술을 발명해내어 아치식 창문과 문이 발달하였다.
<지구라트>
메소포타미아의 각지에서 발견된 지구라이트는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 신의 거처를 마련한 것으로 이 또한 흙벽돌을 사용하여 건축물을 제작한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도 이 지구라트에 속한다. 피라미드 형태에서 평평한 꼭대기 모양을 위에 같은 모양을 여러 층 쌓아 올린 지구 라트는 홍수를 막기 위해 높이 쌓았고, 신들과 인간들과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높게 설치하였다. '하얀 집'이라 부르는 정상부는 신상을 모셔 놓은 성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기원전 3000년 이전의 이집트 최고의 피라미드보다도 더 오래된 백색 신전이라 일컬어지는 지구라트가 우르에 남아있다. 지구라트는 기원전 600년경에 파괴되었다.
<바벨 탑>
고대 최고의 도시 신바빌로니아 바빌론은 고대 세계를 대표하는 공중 정원과 바벨탑이 있었다. 구약성서에서는 8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바벨탑을 하늘에 이르려는 인간의 오만함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바깥쪽은 나선현의 계단이 휘감고 있고, 그 꼭대기의 내부에는 정교하게 장식된 의자와 황금 탁자가 놓여 있는 신전이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 방에 그들의 신이 머문다고 믿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짧고도 매우 극적인 일화가 실려 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럭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동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공중정원>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공중정원은 건조한 바빌론에 인조공원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벽돌로 만들어진 4개의 연결된 테라스였는데, 그위에는 온갖 화초와 관목이 우거져서 도시 위를 뒤덮고 있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석재가 아니라 흙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소멸 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2. 조각
건축 외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자랑하는 미술품은 저부조 작품이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석재가 드물기 때문에 주로 작은 조각을 만들었는데, 환조보다는 부조가 많다. 저부조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는 현세의 생활 장면, 왕의 사냥 장면 등으로 용맹스럽고 생동감 있게 사실적인 표현 되었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도시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고,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한 전술로 미술을 활용하였다.
<함무라비 법전>
바빌로니아 왕조의 창건자 함무라비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로 씌어진 법전의 완성이다. 이론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이 법전은 견고한 석판에 새겼다. 석판 윗부분에는 태양신 사마시와 함무라비 왕이 부조되어있고, 태양신은 발아래에 저울을 딛고 산을 표시하는 문양의 의자에 앉아 신성한 권력을 상징하는 홀을 든 오른손을 뻗고 있다.
<국왕 나람신의 기념비>
적의 시체를 짓밟고 서 있는 왕과 그에게 용서를 비는 패배한 적들을 묘사한 부조이다. 그들의 왕이 그의 발로 패배한 적의 목을 누르고 서있는 한 패배한 종족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죽어가는 암사자>
사자가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암사자의 축 늘어진 귓볼과 긴장된 근육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단말마의 고통을 잘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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